역사적 사건을 볼 때 기본적으로 원인, 전개, 결과 그리고 의의를 다룹니다. 갑신정변의 엘리트 청년, 동학농민운동의 농민 모두 목숨을 걸고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어요. 그렇다고 이들의 운동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운동의 주장은 1차 갑오개혁에 상당 부분 반영됩니다. 조정 역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까닭이죠. 갑오개혁이 추진되면서 신분제와 함께 반상(班常)의 구별도 사라집니다. 비록 당대에는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보지 못했지만, 역사는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최태성. <역사의 쓸모>. 다산초당
어릴 적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에는 암기해야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사회에 변화의 물결이 넘실거리던 19세기 말 때에는 여러 일들이 있었는지 년도와 사건을 외우기가 쉽지 않았다. 위의 글에 나오는 '갑신정변'은 1884년의 일이고,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에 일어난 일이다.
'갑신정변'이라고 하면 '3일 천하'라는 문구가 함께 연상된다. 조선의 엘리트 계층에서 이루고자 했던 혁명은 3일 만에 실패로 끝났다. '동학농민운동'을 생각하면 일본군의 총 앞에서 힘없이 쓰러진 농민들이 생각난다. 변변치 않았던 무기였지만 나라를 바꾸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룰 수 없었다.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운동'에는 뜻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만다. 그렇다면 그들의 노력은 헛된 것이었을까?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 원했던 것들은 1894년 7월에 시작된 갑오개혁때 반영되어 사회를 바꾸어 가는 계기가 된다. 신분제도가 철폐되고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없어진다. 그들의 희생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었다.
이를 보면, 역사에서 '희망'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사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모습은 큰 차이가 있게 마련일 터. 자기 앞에 주어진 현실에 자포자기하고 순응적으로만 살기 보다는 '희망'을 가지고 사는 이에게 '가능성'이 더 열려 있지 않은가.
조선의 큰 뿌리와도 같았던 신분제와 반상의 구분도 '희망'을 품고 '행동'으로 옮기는 이들 앞에서 무너졌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희망'을 버리는 순간 '가능성'도 사라진다. 그렇게 우리는 '패배'한다. 길고긴 역사를 바라보듯, 우리 삶도 길게 바라봤으면 좋겠다. 그 속에서 우리는 분명 '희망'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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