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
라틴어 구절들을 읽으며 과거를 살았던 이들의 삶을 읽다
이 책을 쓴 한동일 신부는...
바티칸 대법원을 로타 로마냐(Rota Romana)라고 하는데, 한동일 신부는 한국인 최초이자 동아시아 최초로 로타 로마냐의 변호사가 된 사람이다. 이 곳의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법을 알아야 하고,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언어인 라틴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멀리 로마까지 건너가서 어려운 공부 끝에 로타 로마냐의 변호사가 된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어려운 라틴어 문법을 하나씩 가르쳐 주기보다 라틴어를 사용해왔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려주며, 우리 스스로 삶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보게끔 해준다.
인상적인 구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언제나 꿈꾸고 희망합니다. 희망. 참 아름답고도 허망한 단어입니다. 그것만큼 인간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도 없으니까요. '될 것이다, 좋아질 것이다, 나아질 것이다, 기다리면 될 것이다', 이런 말들을 되뇌면서 고통을 참고 바스러지게 애를 씁니다. 그러나 기약이 없는 것이기에 때로는 희망 고문이 되어 버립니다.
인간은 어째서 늘 꿈꾸고 희망하는 것일까. 책에서는 위의 문구 뒤에 이런 이런 라틴어 문구를 이야기한다. "Dum spiro, spero 둠 스피로, 스페로." 해석해보면 '숨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가 된다.
어쩌면 희망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왜냐하면 죽은 이는 아무것도 희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꿈꾸고 바라는 것이 '희망 고문'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삶에서 '희망'은 꼭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희망은 '삶'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런 면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 어떤 대상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숨 쉬는 동안 희망할 수 있고, 살아 있다면 희망이 존재한 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의 의미
라틴어는 공부하기에 무척 어려운 언어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2000년 전의 고대 로마인들의 쓰던 언어로, 지금은 사용하지 않은 언어라는 점이다. 두 번째, 문법을 이해하기가 무척 어렵고 암기해야할 것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를 공부하다 보면, 그 언어를 쓴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고,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언어의 어원을 깊이 공부해보면 해당 단어와 관련된 문화와 역사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 볼 필요가 있다. 로마의 중학생은 문법과 문학을 철저하게 공부했다. 언어가 가지는 힘은 단순하지 않다. 언어에는 그 민족이 가지고 있는 문화, 역사, 철학이 녹아 있다. 그 안에 수많은 스토리가 있다.
조승연 작가의 <이야기 인문학>에는 박물관을 뜻하는 단어 ‘museum’의 어원이 나와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람들의 몸에 들어가 사람을 노래 부르게 하거나 춤을 추게 하거는 9명의 귀신이 있다고 믿었는데 이들을 ‘Muse(뮤즈)’라고 했다. 뮤즈가 들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음악공연이라고 생각해서 음악을 ‘Music(뮤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후에 이집트의 수도인 알렉산드리아에서 프톨레미라는 사람이 인도, 이집트, 바빌론의 여러 사람들이 쓴 악보, 대본 등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로 모았다. 그리고 수많은 예술지망생을 모아 예술을 공부하게 매진할 수 있도록 하였다. 프톨레미는 이 학교를 고대 그리스 예술의 신인 뮤즈(Muse)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뮤즈의 신전’, 다시 말해 ‘뮤제이온(Museion)’ 이라고 불렀다. 기원전 1세기에 이집트는 다시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의 로마인은 ‘뮤제이온’을 로마식으로 바꿔 ‘Museum(뮤지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뜻은 ’뮤즈의 신전‘에서 ’예술학교‘로 변경되었다.
Museum(뮤지엄)이 박물관이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은 18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였다. 당시 혁명 정부는 ’이제 민주주의의 시대가 왔으니 시민이라면 누구나 예술을 즐길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루브르궁에서 ’알렉산드리아의 뮤지엄‘과 같이 최고의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muse’라는 단어에서 ‘museum’까지. 어원 속에 담긴 이야기를 안다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누적된 지혜를 얻는 길이 아닐까?
위의 글은 나의 저서인 《교양인을 위한 로마인 이야기》에 있는 글이다. 언어를 배우는 일은 곧 사람들의 삶을 배우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볼 때, 언어를 배우는 것은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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